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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의역사

우리 조상들은 신석기시대부터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 초기에는 손으로 빚어서 형태를 만들었으나, 나중에는 물레를 사용하여 빠르고 모양도 좋게 만들었다. 토기 표면에 무늬도 그리고 또는 파기도 하고, 모두 불에 구워 물을 담아도 풀어지지 않게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 시기의 토기는 제작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관계로 모래가 많이 섞인 흙을 썼고, 화도도 800도 내외에서 구워낸 것이기 때문에 흡수성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무늬없는 토기
  • 시간이 흐르면서 진흙 가운데는 가소성이 있고 구울수록 더욱더 단단해지는 내화성이 있는 진흙을 찾아내게 된다. 그래서 처음 구워낸 것이 빗살 무늬 토기다. 여기서 좀더 발전한 것이 무늬 없는 토기이다. 무늬 없는 토기는 청동기 시대에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시대 토기는 모래가 많이 섞인 거친 그릇으로 항아리의 처음이 아닐까?

홍도와 흑도

무늬 없는 토기 이후에 홍도와 흑도가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홍도와 흑도는 무늬 없는 토기보다 모래가 적게 섞이었다. 무늬 없는 토기는 실용적이고 모래가 많은 만큼 단단하고 양도 많아 그 시대에 많이 쓰여졌다. 모래가 많으면 단단하다는 것은 모래가 항아리의 뼈대 역활도 하고 모래엔 유리의 기본이 되는 규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녹아서 흙과 엉겨 붙었으니 단단했을 것이다. 홍도와 흑도는 수량도 적고 그 시대의 의식용이나, 제례, 부장품 등의 특수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무늬 없는 토기는 항아리의 근원이 되었고, 홍도와 흑도는 자기의 근원이 된 것으로 짐작된다. 무늬 없는 토기는 진흙을 파다가 물에 이겨 반죽하여 메로 두드리고 발로 밟아 태토를 만드는 과정에서 태토의 가는 모래를 섞어 튼튼하게 만들었다. 또한 모래가 들어가면 갈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홍도와 흑도는 진흙을 파다가 물에 풀어 넣으면 굵은 모래나 돌은 밑으로 가라 앉고 고운 진흙만 위에 남는 것을 원리로 한다. 여러 번 반복하면 아주 고운 진흙이 된다. 그 흙으로 예쁘고 부드럽고 정교한 토기와 도자기를 만들었다.
더욱 발전하여, 회도(灰陶)의 영향을 받아 고온에서도 견디는 내화도가 높은 질을 찾아내고 물레를 만들고, 높은 화도에 견디는 가마를 만들어 그릇을 1000도 이상에서 구워 냈다.

와질토기

회도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을 와질토기(瓦質土器)라고 한다.
와질토기는 기원전 1세기 때쯤 만들어져 4세기 쯤에는 강한 치밀질 토기로 발전했고 이 강한 토기를 석기라고도 한다.
신라와 가야 때 우수한 발전이 있었고, 1200도를 웃돌며 아주 튼튼한 토기이고 환원 번조한 것이다. 이런 과성 속에 지금의 항아리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조선 초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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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정일:2009년 0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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