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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때의 교육

학교는군대가주둔하고있거나없어지고,천막학교에서도수업열의는뜨거웠다
  • 한국전쟁 3년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학교는 문을 닫거나 피란지를 돌아다니며 천막이나 야외에서 수업을 해야 했다.

    전쟁으로 인하여 학교나 시설물이 파괴되고 소실된 것이 상당수이며 전쟁지역의 교육시설은 대부분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거나 병원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초·중등학교는 피란민 수용소로도 사용되고 있었다. 생존한 교사나 학생들의 상당수는 군에 입대하여 전투에 참가하였고, 그래서 실질적인 교육은 마비되었다.
영도대교밑점집들

  • 교시, 교과서, 학용품이 없는 빈곤 속에서 임시로 전시 교재인 전시독본을 중심으로 반공사상의 강화교육을 목표로 하였다.
    교과서나 학용품 없이 다른 과목보다 이를 비교적 잘 수행해 낼 수 있는 국어과와 사회과 교육이 주로 행해졌으며 월등히 많은 시간배당을 받았다.
    전쟁이 일어난 직후의 교육계 상황은, 6월 25일 10시를 기하여 문교부는 서울 이북지역의 국민학교에 대하여 임시휴교령을 내렸고, 중등학교 이상에 대해서는 각급 학교장의 재량에 의해 휴교 여부를 결정해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다.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어 10월에 열린 서울시 교육임시 재건위원회에서 서울시내 초·중등학교의 개교가 결정되어 2학기 수업이 일시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불과 2개월 후 1·4후퇴로 말미암아 다시 휴교 상태에 들어갔다.
색상도없이학업에열중인학생들

광복이후~한국전쟁교육의발자취

  • 1945년 새 학기제 발표 9월 1일 신학기(현대식교육 시작)
  • 1947년 최초 남녀 공학제 실시
  • 1950년 6년제 의무교육 실시
  • 1951년 6·3·3·4 신학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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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정일:2009년 01월 08일
  • 콘텐츠 관리부서:민원봉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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