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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발생과정

  • 6·25 전쟁 때를 생각하면 '피란살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약 240만의 인구가 피난을 떠났고, 10만명의 전쟁고아가 생겨났으며, 1천만의 이산가족이 발생하였다. 피란민이 약 240만명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당시 남북한 인구 3천명으로 보았을 때, 전 국민 13명당 1명 꼴로 피란을 간 것이다.
    이 엄청난 희생자를 낳은 한국전쟁이 이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에게 잊지못할 기억들을 안겨준다.

  • 6·25전쟁은이렇게전개되었다
  • 평화로운 서울, 때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은 중부전선을 중심으로 3·8선 전역에 걸쳐 남하하여 한국전쟁은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날 서울시민들은 3·8선 근처에서 들려오는 단순한 무력충돌로 가볍게 생각하고 평화롭게 일요일을 즐겼다. 그러나 전쟁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정부에서는 한강교를 폭파하고 전쟁이 시작된지 3일만에 북한군은 서울로 진입했다.
  • 북한군이 점령한 서울의 거리, 미처 피란가지 못한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강제노동에 서명하고 부역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젊은이들은 인민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전장에 끌려 나갔고, 공산주의를 반대하거나 비협조적인 사람은 인민재판으로 수난을 겪었다.
  • 1950년 7월 1일 유엔군이 참전하고 9월 15일 맥아더에 의한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었다.
    마침내 서울을 수복, 공산치하 90일은 끝을 맺었다.
    이 엄청난 희생자를 낳은 한국전쟁이 이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에게 잊지못할 기억들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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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정일:2009년 0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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