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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교육

보통학교 교육을 가장 중시한 일본의 교육제도 일본인 교사 배치,한국어 말살
  • 1906년 일본은 이른바 학제개혁이라는 것을 단행하여 '보통학교' 중심으로한 교육제도를 확립하였다. 그리고 일본인 교사들을 학교에 배치함으로써 한국 교육에 대한 감시와 통제체제를 사실상 마무리 하였다. 보통학교 교육을 가장 중시한 기본원칙이 되었던 일본의 교육 정책은 고등교육을 포함한 전문교육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킴으로써 한국인에 의한 근대화로의 발전을 억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 1910년 조선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은 일본은 식민지교육정책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일제 침략하의 식민지 시기를 보통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한일합방에서부터 3·1운동까지를 제1단계인 '무단 통치정치기'로 보고, 3·1 운동 이후부터 중·일 전쟁이 일어난 1937년까지를 제2단계인 '문화정치기'로, 1938년부터 해방 전까지를 제3단계인 '황국 신민화 정책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황민화 교육은 학교 교육과 사회 교육으로 이루어 졌다. 1941년 국민학교령을 공포하여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칭함과 동시에 국민학교의 교육과정에서 한국어를 완전히 추방하였다.
일제시대교육의발자취
1911년 조선교육령 공포(식민지 교육정책)
1938년 제3차 교육령 개정(황국식민화)

일제시대교과서
  • 일제시대교과서
  • 1910년~광복이전
  • 이 기간의 교과서는 일본의 식민지교육정책을 우리나라 국민에게 강제로 인식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국어는 조선어라는 용어로 바뀌고 일본어가 국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한글의 사용을 점차 삭제, 금지하고 일본어의 학습을 강요하였다. 1922년부터는 모든 교과서는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도록 하여 선각자들의 민족교육을 막고 민족정기말살을 표면화 하였다.
통신부
  • 통신부
  • 운봉소학교에 다니던 곽지용의 통신부로 당시의 국어는 일본어였고 조선어라고 표기된 부분의 성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어는 가르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금강산화첩
  • 금강산화첩
  • 1941년 일본인이 경영하던 덕원상점에서 발행한 것으로 금강산 현지(강원도 온정리)에서 관광객, 수학여행 학생들에게 판매하였다.
지리수업장면(1944년)
  • 지리수업장면(1944년)
  • 당시 지리시간에는 일본의 우위관념의 주입과 '대동아공영권'에 관한 사상교육에 치중하였다.
지리수업장면(1944년)
  • 지리수업장면(1944년)
  • 일본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나이어린 학생들에게 신사참배, 한국신민의서사 암송 등을 강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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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정일:2009년 0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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