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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생활모습
일본영사과(1884년10월준공)
  •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 중이던 1904년 2월 한국정부를 강압하여 한일의정서(韓日議政書)를성립시켜 내정간섭의 발판을 만들고, 같은 해 8월에는 제1차 한일협약인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게 하여 고문정치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식민지화 공작에 들어갔다.1905년 제2차 한일협약인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이에 따라 1906년 2월 통감부를 설치하고, 이른바 보호정치를 펴 외교권을 대행하는 등 실질적인 지배에 들어갔다. 이어 1907년 7월에는 헤이그 밀사사건을 구실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 7조약을 강제하여 통감이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걸친 통치권을 전단하도록 하였으며, 한국인 대신 밑에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 일본인 차관을 두는 차관정치를 실현하였다. 또한 '한국 사법 및 감옥사무위탁에 관한 각서'를 통해 한국의 사법권을 탈취하였으며, 이어 한국군대를 해산하였고 한일경찰관을 통합하여 한국 경찰관을 일본 관헌의 지휘감독 하에 두었다.
    마지막 단계로 1910년 8월 22일 합병조약의 체결을 강행함으로써 일제의 한국식민화 침략은 완성되었다. 여기에는 한국 위정자들의 무능과 이완용을 필두로 한 친일내각, 이용구·송병준 등으로 대표되는 일진회(一進會) 등 매국노들의 반역행위도 큰 몫을 하였고, 미국·영국 등 열강국들의 묵인도 일본에게 도움을 주었다. 일본은 한국병합을 달성한 뒤 종래의 통감부를 폐지하고 보다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같은 해 10월 1일부터 구체적인 한반도의 경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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