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빈해수욕장
자갈돌이 많아 지형적 특성으로 명명된 지명으로서 일본인들이 점령하고는 일시 남빈해수욕장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남항일대의 용두산측 바닷가는 자갈돌이 많아 자갈치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자갈치는 본래 '자갈+치'로 구성된 지명이며, 이 지명은 이 해안이 매립되기 전에 이미 명명된 것으로 본래 주먹만한 크기의 옥돌자갈들로 이루어진 수려한 자갈해안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치'는 '언저리', '언덕빼기'라는 뜻이니 이에 자갈치는 '자갈언저리'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명명된 지명으로서 일본인들이 점령하고는 일시 남빈해수욕장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부산항의 중추기능은 말할 나위가 없이 항만 시설 확충공사와 더불어 나날이 엄청난 무역거래실적을 올려 나가고 있던 북항쪽에 몰려 있었다. 이와 같은 부산항 북항이 엄청난 무역거래실적을 올리고 있던 것과 더불어 부산항은 또 다른 기능인 어업 전진기지와 연안 무역 중요 항구로서의 역할이 증대되어 1920년대 남항이 건설되었다.
1928년 공사실시인가를 얻는 남빈 매축은 일본인들의 부지확보 외에도 남항일대를 극히 완전한 항만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옛 시청에서 초장동까지의 모든 해안을 직선으로 매립하여 연안무역항 및 어업의 기지를 세우고자 한 것이다. 이후 용두산 아래의 바닷가였던 지역과 매축된 곳을 일제시대에는 남빈정이라 부르다 해방 이후인 1947년 우리식의 한자 지명인 '남포'로 바뀌어 지금의 동명으로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