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피난생활
6.25전쟁당시피난생활 1
6.25동란의 애환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중구지역은 전쟁이 일어나면서 용두산을 중심으로 한 대청동, 보수동, 영수동 일대에 피난민들의 판자촌으로 발 디딜 틈이 없게 된다. 그리고 이들 이산가족의 막연한 기다림은 유명한 영도다리에서의 기약 없는 만남을 낳게 되고 영도다리 근처는 이들을 노리고 운집한 점쟁이 골목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물밀듯이 모여든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더러는 암거래 군수 물자들을 내다 파는 '얌생이꾼'으로 둔갑하고 이들 잡상인들로 인해 자갈치시장이 형성되고 국제시장이 들끓게 된다. 1954년 말에 피난민 판자촌에 일어났던 큰불로 판자촌은 거의 불타고 엄청난 화재민을 내기도 했으나 이로 인해 용두산은 지금의 공원 모습을 찾게 된다.
6.25동란 때 정든 고향을 등지고 부산으로 밀려 내려 왔던 피난민들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 한겨울에도 불을 지필 수 없던 얼음짱 같은 수용소 안에서 부모가 또는 자식이 얼어서 숨져 가는 것을 보고도 단장(斷腸)의 슬픔을 되씹고 있어야만 했다. 굶주림 따위는 아예 예사로운 것이 피난민들의 생활상이었다. 그래서 피난민들은 닥치는 대로 어떤 일에든지 뛰어 들어 밥벌이에 나섰다. 부두 노동, 공사장 목도꾼, 허드렛꾼, 지겟꾼, 노점상 등으로 피난민들은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하루살이 벌이에 나섰다. 그래도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에 어려워 별의별일에 다 손을 댔다. 미군 부대에서 버리는 음식 찌꺼기를 끌어 모아다가 끓여 파는 『꿀꿀이 죽-일명 유엔탕』장사, 내다 버린 미제 깡통 빈 것을 주워 모아다가 반반하게 펴서 끼워 맞춘 것으로 판자집 지붕을 이어주는 『깡깡이』 장사,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를 주워 다가 땔감으로 파는 전마선업(傳 馬船業), 철길가에 버려진 코크스를 주워 다가 땔감으로 쓰거나 파는 일, 때로는 철도 화차에서 석탄을 잽싸게 훔쳐 다가 땔감으로 파는 일, 골목골목 누벼 다니며 머리를 깎아 주는 떠돌이 이발사 등이 피난들이 해내고 있던 밥벌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