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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동 부산터널 입구 삼거리 ~ 코모도호텔 앞 ~ 메리놀병원 앞 ~ 가톨릭센터 앞 ~ 대청 국제시장 입구 사거리(오늘날 위치) 예전엔 영주동 시장 남쪽 입구 ~ 부원아파트 뒤 ~ 논치시장 ~ 대청로로 이어지는 길을 영선고개라 한다.


그러나 이 고개는 본디 "영선고개"가 아니라 "유엔도로" 또는 "유엔고개"라고 한때 불렸었다. 이 고갯길은 6.25 동란 때 부산에 상륙한 유엔군이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아스팔트 길로 닦아 냄으로써 "부산 아스팔트 도로 제1호"가 됐었다. 그래서 "유엔도로" 또는 "유엔고개"라고 불렸던 것이다.
옛날부터 "영선고개"라고 불렸던 곳은 "유엔도로" 동쪽 밑에 있는 언덕 바로 윗길이 통하고 있는 고개였다.
이 "영선고개" 착평공사(1909~1912)때 헐려 없어진 "영선산" 등성이를 가로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산이름을 따서 붙인 고개 이름이다.

이와 같은 "영선고개"를 넘나드는 고갯길은 "초량왜관"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대낮에조차 사람이 혼자서는 좀처럼 나다닐 수 없던 소름 끼치는 으스스한 오솔길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무렵 초량왜관 담장을 함부로 넘어다녔다가 우리나라 번병(番兵)에게 들킨 사람이 참수형을 당했던 곳이 바로 영선산 숲속이었기 대문이다. 게다가 그런 영선상에 우거져 있던 숲은 대낮에도 하늘을 가려 "영선고개"가 아주 어두컴컴해서 이 고갯길을 넘나들 때는 누구나가 으슬으슬 해졌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낮에도 무리를 짓고 "영선고개"를 넘나들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무렵 사람들이 "영선고개" 오솔길을 넘나들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은 초량왜관 객사(客舍)와 임소(任所)가 있던 영주동에서 초량왜관 사이를 오가는 길목이 바로 이 고갯길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영선고개" 오솔길을 사람들 누구나가 마음 놓고 넘나들 수 있게 된 것은 1912년 영선산이 깡그리 헐려 없어지고 그 자리에 신작로가 닦인 뒤부터였다.
소름 끼치도록 음침한 처형장 영선상이 헐리고 나자 "영선고개" 오솔길은 이때부터 우거져 있는 녹음이 오히려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가 하면 전망 탁 튀어 시원한 고갯길로 탈바꿈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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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정일:2010년 0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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