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페리 부두

부산항 북항에 있는 오늘의 국제페리 부두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상징하는 한 가닥인 이른바"관부연락선" 부두로서 1912년 6월 15일부터 등장했다. 이 부두는 부산 세관을 비롯한 대형 여객선 계선장 설비에 충당할 뿐만 아니라 부산역 철로를 여기까지 연장하여 해륙 운수를 연결할 목적으로 1906년 7월 1일 기공하여 1912년 3월 31일에 준공을 봄으로써 그해 6월 15일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 이 부두를 “제 1잔교”라고 이름 지어졌었다. 부산항 북항 제 1잔교가 건설됨으로써 여기에는 3-4천 톤의 대형 기선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게 됐다. 또 이 제 1잔교에는 철로선로를 복선으로 깔아 놓음으로써 "관부연락선"에 실려 온 열차가 부두에 바로 경부선철도로 연결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한만급행열차” 발착점이 됐던 것이다. 그 뒤 1915년 3월 1일부터 1917년 3월 31일까지 만 2년 동안에 걸쳐 제 1잔교 앞 바다 밑 4만 1천6백 평을 준설함으로써 썰물 때 수심이 12미터가량 이르게 하여 7천 톤급 기선 2척, 2만 톤급 기선 2척이 계류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초대형 기선을 여기에서 발착시켜 해상 운수 능력을 크게 늘여 나갔던 것이다. 이상의 “관부연락선” 부두 건설 및 준설 공사는 “부산항 제1기 항만시설 공사” 및 “부산항 제1기 해륙연락설비공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관부연락선” 부두는 “부산항 제 2기 항만시설공사”에 따라 다시 그 규모가 확충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관부연락선” 부두 곧 제 1잔교는 제1기 항만시설 공사에 마련됐던 제 1잔교와 가지런히 계선장을 따로 건설함으로써 별도로 3천톤급, 5천톱급, 7천톤급 기선이 각각 1척씩 동시에 접안할 수 있게 하고 여기에다가 철도노선을 단선으로 깔아 놓은 다음에 제1부두 본체와의 사잇바다를 메워냈다. 이렇게 해서 확장된 “관부연락선” 부두는 일본이 일으켰던 이른바 태평양전쟁에 강제 동원됐던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전쟁 수행을 위하여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려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태워 나르는 원한 서린 부두로 등장했던 것이다. 이 “관부연락선” 부두는 태평양전쟁 종말과 더불어 “관부연락선” 운항이 중단된 뒤 미군정 당국이 운영해 오다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우리 손에 넘어 왔다. 한때 “부산수산센터”로 사용되기도 했던 제1부두는 다시 1970년 6월17일 지난 25년 동안 중단됐던 한일 간 정기여객선이 취항하는 “국제페리” 부두로 등장함으로써 활기에 넘치는 기능을 되찾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국제페리 부두는 최근에는 중국과의 정기여객선의 운항으로 앞으로 중국관광객도 부산을 많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부두의 총면적은 4만㎡이며, 여기에 마련되어 있는 건물면적은 1만 1천7백81㎡이다. 여기에는 컨테이너 야드 1만 3천2백㎡와 차량 통관장 3천1백19㎡가 마련되어 있다. 둘째, 터미널 건물(3층)은 출입국 대합실과 통관장 그리고 귀빈실을 갖추고 있고 아울러 선박회사의 사무실로도 이용되고 있다. 셋째, 안벽은 3백20㎡로서 연간 소형콘테이너 약 6만 개를 처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