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새창] 파노라마[새창] 사진첩[새창] VRML[새창]

영주동
  • 면적
    1동 : 0.29㎢ (중구 전체 10.36%)
    2동 : 25통 113반
  • 행정구역
    1동 : 20통 81반
    2동 : 25통 128반
  • 인구
    1동 : 5,081명 (중구 전체 10.53%)
    남 : 2,478명, 여 : 2,603명
    2동 : 9,752명 (중구 전체 20.21%)
    남 : 4,808명, 여 : 4,944명
  • 인구밀도
    1동 : 17,521명/㎢
    2동 : 28,682명/㎢
  • 동주민센터
    1동 : 영주동 673-1 ☎ : 463-1301
    2동 : 영주동 278 ☎ : 463-1302
  • 법정동
    1동 : 영주동 대창2가
    2동 : 영주동

영주동의지리적위치 1890년대의영주동중구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은 대청동ㆍ중앙동, 서쪽은 서구, 북쪽은 동구와 접해 있다. 조선시대에는 동래군 사중면(沙中面) 지역이었으며, 1896년에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영정1~5정목ㆍ상생정1~5정목ㆍ동고사정ㆍ서고사정ㆍ장전1정목으로 하였다가, 1947년에 영정1ㆍ2정목을 대창동1ㆍ2가로 하고, 나머지는 영주동으로 개칭하였다. 1959년에 영주1ㆍ2동으로 나누어졌다. 영주동의 옛 이름은 임소(任所)라 하였다. 이는 개항 후 외교 통상의 업무량이 늘어나 1890년(고종27년)부터 이에 관한 사무 처리의 전담 부서로 이곳에 감리서(監理署)가 설치된 데서 유래되었다.감리서의 장(長)을 감리, 또는 감령(監令)이라 불렀는데 그 지위는 첨사(僉使)보다 높았으며, 그 관아(官衙) 시설이 현재의 봉래 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감리서가 있었고 관원이 근무하는 직소(職所)라는 데서 임소라고 부르게 되었다.

영선산의유래 1890년대영선고개또한 영선재(瀛仙峴)는 영선산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영선산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영선(瀛仙)이 아니고 용선(容膳)이라는 설이며, 다른 하나는 영선(營繕)이라는 설이다. 용선이라는 설은 이 산이 왜관 안의 일본인과 물물교환(物物交換)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 고개아래 동관문(東關門)이 있어 쌍방이 선물을 보낼 때에는 감리에게 허가를 받아 역관(譯官)이 이곳까지와서 역관의 입회 아래 용인(容認), 선물한다는 데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하지만 좀 억지스러운감이 없지 않다. 다른 한 설은 영선산이 두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어 양산(兩山), 또는 쌍악(雙岳)이라고도 하는데 숙종 때 두모포 왜관을 초량 왜관으로 이설할 때, 초량 왜관을 건축하고 수리하는 재목(材木)이 이 고개를 통해 운반되고 또 일부의 부재(副材)는 이 산에서 공급되었기 때문에 영선산(營繕山)이라는 것이다. 초량 왜관이 건립된 후 우리 나라의 관리인 훈도(訓導) 별차(別差)의 근무처가 바로 감리서 자리였다. 이들은 글귀를 아는 자들로 자기들이 거처하고 근무하는 일대를 신선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瀛州)라 이름하고 자기들은 선인(仙人)에 비유하여 영선산(瀛仙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쌍악이라고도불렀던영선산 부산터널개통식때구경나온부산시민들의모습(1961.8.15)동명의 유래가 된 영선산(瀛仙山)은 쌍악(雙岳)이라고도 하는데, 중부경찰서와 영주동 사이의 해안선에 있었던 2개의 독립 구릉으로 해발 약 40m였다. 1907년에 부산포 매립에 필요한 석재를 공급하기 위해 이곳을 깎아냄으로써 산은 없어지고 지명만 남아 있다.

행정동인 영주1동은 법정동인 영주동 일부와 대창동(大昌洞) 2가로 이루어져 있고, 영주2동은나머지 영주동 일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주동과 서구 동대신동을 잇는 부산터널은 제1터널과 제2터널로 구분되며, 부산에서 처음으로 건설된 터널이다. 영선고개는 부산터널 입구에서 대청로 국제시장 입구 사거리로 이어지는 고갯길이다. 이 고갯길은 6·25 전쟁 때 부산에 상륙한 유엔군이 부산에서 처음으로 아스팔트로 포장함으로써 부산 아스팔트도로 제1호가 되었고, 이 때문에 유엔도로 또는 유엔고개라고도 한다. 청관마을은 영주1동과 동구 초량1동 일부지역으로서 1884년에 설치된 청국영사관을 중심으로 한 중국인 마을이다.

(자료출처 : 중구지)


  • 글자크기
  • 확대
  • 기본
  • 축소
  • 인쇄
  •  
  • 맨위로


정보수정일 및 페이지 담당자

정보수정일:2009년 10월 31일
  • 콘텐츠 관리부서:문화시설관리사업소
  • 담당자 : 최정화(☎ 600-4542)

페이지 유틸리티

  • 즐겨찾기
  • 인쇄하기

페이지 만족도 평가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