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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 면적
    0.22㎢ (중구 전체 7.86%)
  • 행정구역
    11통 45반
  • 인구
    1,417명 (중구 전체 2.94%)
    남 : 823명, 여 : 594명
  • 인구밀도
    6,441명/㎢
  • 동주민센터
    남포4가 32-2 ☎ : 254-1303
  • 법정동
    남포1가, 2가, 3가, 4가, 5가, 6가

남포동지명의유래와동의변천
1930년대남포동남쪽으로 자갈치시장과 남항의 내만항인 남포항이 있고, 동쪽은 중앙동, 북쪽은 광복동과 접해 있다. 조선시대에는 동래군 부산면(釜山面) 지역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남빈정(南濱町)이라고 하였다. 8·15 광복 후 영도의 남항동(南港洞)과 구별하여 남포동이라고 하였다. 1977년 시조례에 따라 중앙동과 동광동 일부가 편입되었고, 1982년 법정동인 대교동 3가와 동광동 1가가 편입되었다. 이후 1982년에는 대교동3가와 동광동1가가 남포동에 편입되었고, 충무동의 1~3가는 남포동 4~6가로 명칭이 바뀌었다. 행정동인 남포동은 법정동인 남포동1~6가로 이루어져 있다.

자갈치로더잘알려진남포동
남포는 부산시청에서부터 보수천 하구를 지나 부산공동어시장에 이르는 해안으로 남항의 해안에 해당한다.일제강점기에 남항일대의 용두산 쪽 바닷가는 자갈이 많아 자갈치로 불렀는데, 지금도 남포보다는 자갈치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일본인들은 이 지역을 남빈해수욕장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왜관의확대에따른매축공사
남빈해수욕장(1910년지금의자갈치시장)-1936년2차에걸친남빈매축공사가끝나기전까지자갈받이였던자갈치는여름철에는해수욕장이되었다.초량왜관이 일본 전관 거류지로 바뀌게 되자, 그들은 먼저 일본의 이권을 부산주변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왜관주변을 둘러싼 석벽을 맨 먼저 철거해 버렸다. 그리고 용두산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이권과 세력을 부평동, 대신동, 부민동, 영도방면으로 확대시켜 갔고 마침내 영주동과의 사이에 있던 쌍산(雙山=雙岳)을 제거하여 거류지를 부산의 조선인 거류지와 연결시켰다.
왜관중심의 확대가 한계에 다다르자 바다를 매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른바 북빈매축공사에 이은 남쪽 바닷가도 매축하기 시작하였다.
1931년에 시작한 남빈매축(南濱埋築)은 자갈치 해안을 중심으로 하는 바다를 매축한 부산의 대토목공사였는데, 지금의 부산항 제1부두지역인 북빈(北濱)의 매축에 이어 실시되었다. 북빈매축이 근대적인 국제무역항의 기능을 갖추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남빈 매축은 어업전진기지와 연안무역의 항만 건설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국최대의어시장축제인자갈치축제
남포동의 자갈치시장은 지하철 자갈치역과 남포동역을 끼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어패류가 주종을이루는 전국 최대의 어시장으로서 매년 10월에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를 슬로건으로 내건 자갈치수산물축제를 벌이고 있는데 그 명성과 볼거리는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도 남음이 있으며, 시장 동쪽 끝에는 건어물 도매시장인 자갈치건어물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남포동 거리는 영상문화의 중심지역으로서 해마다 국제영화제를 개최ㆍ세계적인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자료출처 : 중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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